하해 이희섭의 PHOTO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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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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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6-11-03 (금)
ㆍ조회: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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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세계 ”
절망의 푼크툼, 희망의 말 : <마.추.픽.추>

초기 이희섭

쉽사리 희망을 말하는 자 있거든 턱을 날려라!
이희섭의 최근 사진을 보노라면 그런 생각이 저절로 든다.
초기의 이희섭은 기록적 고발 혹은 고발적 기록을 통하여 세상에서 쫓겨난
민중들의 절망적인 모습과 아울러 희망도 말했다.
<죽음의 땅에서 생명을>(1994)에서 볼 수 있는 온산 공단 이주민에 대한
기록,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1998)에 나온
울산 석유 화학공단 이주민의 모습 그리고 울산과 온산 공단 이주민의
인물 이미지를 새겨낸 세 번째 개인전인 <사람만이 꽃이다>(1998)가
그러하다. 또 앞의 세 개인전과는 조금은 다른 맥락에 놓인 네 번째 개인전
<새만금 간척지의 기록> 또한 그렇게 분류할 수 있다.

절망의 푼크툼

<사람만이 꽃이다> 안내 도판의 처음에 나오는 사진 한 장만으로도
그것은 설명 가능하다. 빈 소주잔을 움켜쥔 갈라터진 손톱을 가진 손이
'말하는' 것은 빈곤하기 이를 데 없는 매운 삶이지만, 그 빈 소주잔에는
또다른 이미지가 있다. 그것은 노동과 좌절에 찌든 그의 입김과 찬 소주가
함께 만든 옅은 물기 혹은 눈물이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빈 소주잔,
채워지길 기다리는 소주잔이다. 내가 읽지 않아도 이미지 제 스스로
나에게 날아와 꽂히는 푼크툼 이미지다. 그것은 절망의 푼크툼이지만
희망과 건강을 애써 포기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희섭은 이 사진 아래에
"술을 많이 마시면 취한다."고 새겨 넣었다. 그 글자 또한 나에게 날아온다.
이 당시 이희섭 사진에 나타난 절망은 분노였고, 희망은 낙관적인 태도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것은 <물>을 거치면서 새롭게 태어난다. 절망은
즉자적인 분노가 아니었고, 희망은 누구나 말하는 그런 희망이 아니었다.

억압당한 말하는 사진

앞에서 나는 사진이'말한다'고 했다.
"사진, 그것은 말과 같은 것이다. 별 도리 없이, 무엇인가를 즉각 의미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롤랑 바르트) 하지만 사진은 언어처럼 말하지 않는다.
"사진은 언어도 아니거니와 재료의 조각들로 작업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어서 롤랑 바르트는 영화 이론은 있지만 사진 이론이 없는 이유를
"사회는 자신이 예술로 간주하는 것을 해방시켰던 것에 반해, 테크닉이
될 수밖에 없다고 믿었던 것에 대해서는 억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 사진은 억압당하고 있다. 그렇기에 '말하는 사진'은 물론
이에 대해 말하는 것도 억압당한다.

순수 이미지에 대한 집착 혹은 좌절

그래서인지 다섯 번째 개인전에서 이희섭은 말을 포기한다.
스스로 '응축과 해체의 아름다움'이라고 명명한 <물> (2002) 을 내놓는다.
쓸리는 물, 진군하는 물, 날아가는 물, 매혹적으로 휘감는 물,
구름 혹은 비단 같은 물. 물, 물, 물들의 이미지...
이 속에는 순수 이미지에 대한 그의 집념이 녹아 있다. 그 전에 보여 준
정지된 이미지의 푼크툼 대신에 운동하는 푼크툼을 택한 것이다.
이 운동의 목적지는 순수의 영역이다. 그것은 너무 순수해서 세상을 잊게
만든다. 그 역시 불타는 혀를 목구멍으로 삼킨 듯 하다. <물>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물>은 이희섭의 좌절 혹은 욕망이라고
말하고 싶다. 세상에 대한 좌절과 순수 이미지를 향한 욕망이 뒤엉켜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물>에 와서 말하기를 포기한다. 생각도 멈춘다.
물론 사유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이희섭은 온갖 떠도는 말들과
생각들을 자기 몸 속으로 끌어당겨서, 마치 기(氣)를 돌리듯 돌렸다.
물을 찍는 순간의 무념무상함은 그 운기(運氣)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재차 함부로 말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적어도 그것은'아름다움'이 아니었다.
아름다움을 넘어서서 좌절의 격정과 순수한 이미지 속으로 질주하는 것이었다.
'아름다움'이라고 명명한 그 슬픈 모순어법(oxymoron)을, 나는 느낀다.

아, <마.추.픽.추>, 희망의 말

그렇게 물처럼 흘러서 그는 <마.추.픽.추> (2003)로 '초기 이희섭'을
마감하는 동시에 다시 출발한다. 16세기에 스페인에 의해 멸망된
잉카 제국의 정글 속 폐허 도시 마추픽추. 이희섭의 '마추픽추'는
어두운 하늘과 음침한 구름 아래 깔려 있다. 그것은 스크린의 20분의 1도
차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겨우 흔적만 드러낸다.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 덕택에 온전하게 조그만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것은 절망감으로 가득하다. 아뿔싸, 내가 마추픽추에 살고 있었다니!
그런데도 불길하면서도 안심스러운 까닭은? 그것은 이 절망의 푼크툼이
비로소 온전하게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허망한 문명비판이
아니라, 도시의 게걸스러움을 하늘과 구름 그리고 어둠으로 짓눌러
숨기면서 다시 드러내는 따뜻한 비판이다. 수 백 개의 아파트 군락은
동정하고 싶은 우리의 삶 -이희섭 자신의 삶까지 포함한- 그 자체다.
아파트 군락은 절망의 푼크툼을 사납게 내쏘지만 그 아파트 군락 자체의
어둠은 너그럽다. 그래서 이희섭의 <마.추.픽.추>를 절망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것은 희망이기도 하다. 그러나 초기 이희섭 사진에서 나타난
즉자적인 분노로서의 좌절도 아니고, 누구나 쉽게 말하는 그런 희망은 아니다.
게다가 정말 역설적이다. 롤랑 바르트가 말했듯이, 움직이지 않는 대상을
말로 바꾸고, 가장 비문화적인 것을 가장 사회적인 것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이희섭은 쉽사리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죽음의 땅에서>부터 <물>에
이르기까지 그는, 절망과 희망 그러니까 지옥과 천당을 수십 번 오갔을
것이다. 10여 년의 세월이었다. 그 세월은 그에게 마음의 병을 씌웠고,
가족과 친구들의 가슴에는 못을 박았다. 그러니 그 앞에서 함부로 희망을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할 일은 <마.추.픽.추>를 통하여 자신의 병을
고치고 가족과 친구들의 못을 빼는 이희섭을 묵묵히 보는 일뿐이다.

이효인 (영화평론가, 경희대 교수)


▣ 작가노트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먼 곳에서 바라보면서 필름에 담았습니다.
마추픽추는 페루의 안데스 산맥 높은 곳에 폐허로 남아있는 수백년전
멸망한 잉카제국의 마지막 도시이름이며 '늙은 봉우리'라는 뜻이랍니다.
1532년 스페인제국의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잉카제국을 점령한 후 약 4백년간
역사 뒤로 사라졌다가 1911년 미국의 고고학자이자 탐험가인 빙엄의 무리에
의해 발견되기까지 이 도시는 밀림과 협곡 속에서 숨죽인 채 폐허로 남아
있었습니다. 어떻게, 왜 이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사라졌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고, 어떤 기록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황금을 좇아 잉카의 문화와 재화를 모조리
끝장낸 무자비한 스페인 제국에 쫓겨 밀려나다가 마추픽추를 마지막으로
잉카의 후예들은 깊은 밀림으로 뿔뿔이 흩어져갔지 않았겠느냐는 것입니다.
병든 이와 늙은이들을 묻고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흘리며 밀림으로
들어가는 잉카의 병사들이 마추픽추의 마지막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이번 사진들은 최후의, 망각의, 쫓겨난 그래서 수백년간 까마득히 잊혀졌다
또 다른 제국의 탐험가에 의해 발견된 마추픽추를 염두에 두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일구어낸 이 거대한 콘크리트 문명이 유구하고 영원하리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태양의 단절을 주장하는 문명 또한 만만치 않은
힘으로 우리를 죄어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거대콘크리트 문명이 어느
순간에 밀림에 뒤덮여 몇백년, 몇천년 혹은 몇 만년 후에 또 다른 마추픽추로
발견되어질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오래된 미래의 발견자들은
이 유적들을 "거대 시멘트 무리무덤"이라고 이름 붙일지도 모르지요.
먼 산과 먼 미래에서 이런 마음으로 일년여동안 찍어왔습니다. 산에 올라갈
때마다 우연이겠지만 하늘의 구름과 태양은 언제나 저를 도와주었고 원하는
빛들을 보내주었습니다. 이런 도움이 없었다면 이 사진들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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