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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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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ltkdrud의 두번째 글 ”
할매의 농사는 달랑 논 네 마지기였다. 밭은 없었다. 이 농사를 남한테 맡겨 반분해서 일 년 먹을 양식과 모든 가용의 돈을 사야했을 텐데 먹을 입이 많지 않았고 학자금으로 뭉칫돈을 쓰는 자식이 없어서 그나마 견디었겠지만 아끼고 절용하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지 않았나 싶다. 당시로서야 누구나 그랬겠지만 할매의 절약도 어지간은 했던 기억이 난다. 하여튼 당장 짚부터가 문제였다. 짚도 소여물이며 이엉이며 새끼며 가마니 등등 쓰일 데가 많아 한 단이라도 허투루 버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 사정에 두마지가 논에서 나온 짚만으로는 이엉을 다 댈 수가 없으니 농사가 많은 집에서 얻거나 사야했을 거다. 그렇게 짚을 확보해 둔 다음에는 놉을 구해야 했다. 지붕을 다 덮을 만큼 이엉을 엮고, 그걸 지붕에 올려 묶고 하려면 적어도 서너 명은 필요했다. 집에 남정네가 있다면야 부족한 일손만큼만 구하면 될 테지만 필요한 일손 전부를 구해야 했으니 할매는 온 동네를 다니며 일손 비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깔끔받은 할매 성격에 아무나 데려 오는 게 아니라 솜씨 있고 됨됨이 좋고 그리고 무엇보다 평소 경우 없는 짓으로 할매 눈 밖에 난 적이 없는 사람이어야 했다. 이렇게 까다로운 심사(?)기준을 통과한 사람으로 놉까지 구하면 드디어 이엉 얹을 준비는 다 된 셈이었다. 참, 그날 일꾼들한테 대접할 술이며 참이며 점심을 위해 자반마리라도 미리 장을 보아 두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고. 드디어 받은 날이 왔다. 평소보다 일찍 아침을 지어 먹고 할매가 머리에 수건을 둘러쓰고 걸리적거릴 만한 것들을 대충 치워 놓는 등 마당설거지를 마칠 때쯤이면 짚바리를 싣고 일꾼들이 도착하는 것이다. “아이고, 일찍이도 왔네. 고맙구매.” 일꾼들은 대충 수인사를 하고 우선 담배부터 한 대씩 피우며 일의 국량을 맞춰본 뒤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늘 둘만 있던 집에 억실억실한 남자들이 서넛이나 몰려와 일을 하는 것이 신나기도 하고 먼지나 뒤집어쓰겠지만 어쨌든 처음 보는 일을 가까이서 지켜본다는 것이 좋기도 해서 괜히 덩달아 용이 쓰였다. 한 사람은 마당가에서 손에 물을 묻혀가며 새끼를 꼬고 다른 사람들은 지붕위로 올라가 삭은 이엉을 둥글게 말며 걷어내는 일을 시작한다. 나는 대야에 물을 떠다 준다거나 굳이 붙들 필요도 없는 사다리를 잡고 있다거나 해가며 괜히 한몫 거드는 기분을 낸다. "강생이 니는 고마 방에 가 있거라. 미금이 날라싸서 안 좋다.” 할매가 지청구를 하든 말든 나는 이리저리 마당을 쏘다니며 새끼 꼬는 아저씨 옆에 쪼그리고 앉아 참견도 하고 짚 가닥도 건네주고 그 짓이 시들해지면 다른 곳으로 쪼르르 달려가 지붕이 얼마나 걷혔는가 짐작도 해보고…. 삭은 새 걷어내는 일과 그날 쓸 넉넉한 양의 새끼가 다 꼬아지는 것은 얼추 비슷하게 끝이 났다. 여기까지가 일의 한 매듭이 되는 셈인 모양, 일꾼들은 다시 담배를 한 대씩 피고는 이제 손을 맞춰 이엉을 엮기 시작했다. 한 움큼씩 뭉친 짚 밑동 부분을 두 가닥 새끼 사이에 넣고 새끼를 엇갈리게 하여 단단히 조인 뒤 다시 한 움큼의 짚을 넣고 조이고… 이렇게 계속해 가며 지붕의 길이에 맞춤해 질 때까지 이엉을 엮어 가는 것이다. 이때쯤이면 마당은 온통 일어난 먼지로 자욱해 지고 발 디딜 틈이 없이 어질러지게 마련이었다. 할매는 정지에서 일꾼들이 먹을 점심을 준비하고 나는 이윽고 무료해져서 마루에 걸터앉아 다리를 달랑달랑 흔들며 일꾼들을 바라보거나 공연히 기어 나온 노린재를 지푸라기로 쿡쿡 찌르며 놀려대거나 할매가 일하는 정지에 들어가 아궁이 앞에 앉아 부지깽이로 불이나 들쑤시며 놀곤 했다. “할매, 저게 아제들 밥은 언제 묵노?” “하마 다 돼 간다. 내 강생이도 오늘 일을 마이 해서 시장한 가베?” “으응. 내도 밥 마이 도.” “오야, 마이 주꾸마. 마이 묵고 큰 일꾼 해라.” 앞집의 신반 할매가 뭐라도 찬이 될 만한 것을 보시기에 담아 마당을 들어서는 것도 이 무렵이었다. “다완 양반 욕보누매” 우선 일꾼들한테 인사치레부터 하고서는 “몸써리야. 서답해 널어 났는데 못골띠기 너거 집에서 문지가 날라 와서 말캉 아시 빨아야 될다. 내리 앉는 것도 아인데 마알라꼬 철철이 지붕은 갈아 쌌노, 어요. 이우지가 조야야 물밥 천신이라도 할 낀데….” 농담을 건네며 합죽한 입으로 흐물흐물 웃는다. 농담이라면 할매도 한가락이 있는지라 마주 웃으며 받는다. “문디이 썩지랄 안 하나. 그 서답 내 해 주꾸마. 모지리 걷어 오지, 와?” 신반 할매는 할매가 무쳐 놓은 나물을 손가락으로 집어 올려 간을 본다. “요새 고사리가 어딨더노? 보드랍네.” “전에 씨고 남은 거를 불라가 무칬는데, 어실 줄 알았디이 묵을 만 한가베?” 두 할매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상을 준비하여 이윽고 점심상이 차려졌다. “보소, 인자 저심 잡숫고 하소. 찬도 없는데 식으마 더 맛 없다. 뜨실 때 자시소.” 일꾼들은 꼭 그런 대목에서 스스러워 했다. 뭐 공밥 얻어먹는 것도 아닌 터에도 공연히 체면을 차리며 민적대가다 할매가 두어 번 더 재촉을 해야 비로소 일손을 털고 상이 차려진 마루에 올라앉는 것이었다. 고봉으로 담은 밥과 실파를 넣어 말갛게 끓인 국, 북어토막을 손톱 만하게 썰어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한 노란 계란찜, 아궁이 잔불에 석쇠를 얹어 노릇하게 구운 갈치, 고사리며 무채나물, 밥 위에 앉혀 끓인 된장찌개, 김치와 간장 종지 - 호화롭지는 않았으나 맛깔나게 차린 밥상은 군침을 돌게 했다. 곁들인 탁주부터 먼저 한잔 쭈욱 들이켠 다음 일꾼들은 숟가락으로 밥을 꾹꾹 다져서 커다랗게 한 술 떠서는 맛있게도 먹었다. 할매, 신반할매와 나는 따로 툇마루에서 작은 두레반에 둘러 앉아 모처럼 가짓수 많은 반찬으로 점심을 먹었다. 숭늉까지 물린 일꾼들은 담배 한 대씩을 피고 다시 일을 시작했고 맛있는 반찬 덕에 과식을 한 나는 배가 불러 씩씩대며 혼자 놀았다. 웬일인지 오후의 장면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인물 훤칠하던 한 아저씨가 초가마루를 엮으며 흥얼거리던 노랫가락, 이엉과는 달리 마루는 좀 기술이 필요했을 텐데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능숙한 솜씨로 마루를 엮던 모습이 아련할 뿐이다. 이렇게 해서 이엉을 얹어 새끼로 동인 후 마지막으로 마루를 얹고 추녀 끝에 비죽이 나온 짚을 낫으로 앞머리 자르듯 가지런히 잘라 놓고 나면 일은 거의 끝나는 것이었다. 일꾼들이 남은 짚을 갈무리하고 썩은 새는 마당 한 쪽에 쌓아두는 등 대충 뒤 설거지를 할 무렵이면 가을해도 어느 듯 뉘엿하니 서편 하늘로 넘어가 있었다. 일꾼들이 머리에 둘렀던 수건을 풀어 온 몸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고 돌아갈 준비를 하면 할매는 준비해 두었던 권련갑을 들고 나와서 일꾼들에게 건네주는데 또 어김없이 몇 마디 실랑이가 오갔다. “아이고 참말로 욕밨구매. 우예 이래 일손이 야무노, 어요. 거어 아이랐으마 누가 이래 해 줄 것고. 덕분에 핀키 자겠소. 이거,” “아이고, 와 이캅니꺼. 저심도 잘 얻어 묵었는데….” “빌 희안한 소리 다 한다, 어요. 그기 어데 공밥이건데? 내사 똑 미안시럽아 죽겠구마는. 아무소리 말고 세키 받으소.” “허, 참. 그라마 잘 피우겠심다.” 샛노란 짚으로 이은 외갓집은 황금 지붕을 인 듯 멀리서 보아도 자랑스러웠다. 둥글게 포만한 지붕, 그 아래 두 식구. 그날 밤은 어린 나도 공연히 피곤하여 할매와 육백 한 판도 안치고 일찍 잠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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