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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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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친구 dltkdrud의 글입니다,. 1 ”
어릴적 이야기가 참 좋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퍼 올립니다. 이엉 얹던 날> 무릇 혼자 사는 형편의 궁색함이란 생활의 도처에서 난데없이 불거져 나와 새삼스런 애잔한 한숨을 남 몰래 삼키게 만드는 법이다. 홀아비의 처연함은 뭉쳐놓은 빨랫감에 묻어 있고, 힘으로 후딱 해치워야 할 일감을 앞에 두고 그런 일손이 곁에 없을 때 아낙은 한숨짓게 되는데… 젊어 혼자되신 외할매한테는 늘 그런 일이 자탄의 빌미가 되곤 했다. 가령 이런 경우다. 긴 겨울밤이 잦아들고 창호지에 푸른빛이 돌며 아침이 밝아 올 무렵이면 고래가 시원찮았던 방구들은 거의 식어버려서 풀발 센 광목 이불 홑청은 포근하기는커녕 서걱대기나 하면서 지 먼저 냉랭해졌고 어깨 죽지에 달려드는 냉기 때문에 잠은 저만치 달아나고 몸은 더욱 오그라들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삽짝 밖으로 난 고샅길로 탈그락탈그락, 나무하러 가는 빈 리어카며 달구지 소리가 연이어 들려올라 치면, “끌끌…저 삼(사람)들은 날도 칩은데 버시로 나무하러 가는 가베…. 핑생에 나무 한 짐 해다 주는 사램이 없으이, 관셈보살…. 망할 놈으 구들은 머시 잘못 됐길래 썽그러이 식어서, 손볼라 케도, 없이, 어데 엄두가 나야제….” 나는 누구 들어랄 것도 없이 중얼대며 돌아눕는 할매의 한탄을 들으며 내가 얼른 커서 나무 한 짐 해오면 할매가 좋아할랑가…생각하곤 했다. 또 많지 않은 농사, 남의 손에 맡겨 짓기는 하는데 다른 논의 벼는 시퍼렇게 우거지건만 왠지 유독 새들새들 비리비리 성글게 자라는 벼를 보며 할매는 “나락도 무신, 똑 얻어 묵을 거 몬 묵은 거 매로…. 주인 발재죽 소리에 나락이 큰다 카는데, 하기사 넘의 논에 무신 정이 있어서 애 터지게 들다 볼 것고. 끌끌….” 차 오른 통시를 푸는 일, 아귀가 잘 맞지 않아 여닫을 때마다 삐걱대는 문짝,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돌담… 이런 일들 앞에 할매는 늘 혀를 차며 한숨을 내 쉬곤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잿빛으로 폭삭 삭아버린 초가지붕은, 누구보다 기강하여 자존심이 셌고 경우에 어긋남을 못견뎌했던 할매로서는 도저히 두고 볼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한숨으로 날려버리거나 참고 견디기엔 너무나도 궁색함이 두드러지는 것이어서 그랬던가. 가을걷이가 끝날 무렵이면 할매는 이엉 가는 일을 해치우기 위해 만반의 준비에 들어갔다. 외갓집은 삼 칸 초가였다. 지붕만 기와가 아니었지 단정하게 지은 그 집은 암팡진 느낌이 들만큼 단단해 보였다. 물론 이 초가지붕은 할매의 오랜 준비와 도모 끝에 결국 기와로 갈아 얹히긴 했다. 옇든 첫 칸은 정지였는데 삐이걱, 판문을 열고 들어가면 성큼 내려서야 할 만큼 바닥이 깊었다. 아궁이 맞은 편 벽 쪽엔 솔가지며 나무푸새가 쌓여 있었고 커다란 솥이 걸린 아궁이 앞엔 불 땔 때 깔고 앉으랍시고 한 뼘 정도 높이의 통나무 등걸 하나가 굴러 있었다. 부뚜막은 언제나 걸레질이 잘 되어 떨어진 밥풀을 주워 먹어도 될 정도였다. 대나무 살강에는 사기대접이며 주발, 접시 등 몇 안 되는 기명들이 불티를 뒤집어쓰고 엎어져 있었지만 달랑 두 식구, 꺼내 쓸 일이 통 없었다. 당장 쓸 그릇이며 수저를 담아놓은 작은 함지는 늘 물동이 위에 자릴 잡았고 그 정지에서 할매는 둘이 먹을 밥을 지었다. 나는 방에서 작은 두레반에 행주질을 해두고 젓가락으로 간장이나 찍어 먹으며 기다리기를 한참, 이윽고 스어엉~하는 솥뚜껑 여닫는 소리가 두어 번 들리고 난 뒤 “내 강생이야, 이거 받아라”하는 할매의 소리를 듣기 무섭게 쪽문을 열고 밥이며 반찬을 받아 상에 올려놓았다. 그러고서도 한참을 꾸물댄 뒤 끄응, 마루를 올라와 할매가 방으로 들어오면 비로소 조손 둘만의 식사가 시작되곤 했다. 앞에 툇마루를 단 큰방에는 아래로 빼닫이 세 칸, 위로 유리를 끼운 여닫이문이 달린 신식 장롱 하나와 할매의 혼수였던가, 이단 농 하나, 쌀뒤주가 일렬로 놓여있었고 나드는 문 쪽인 머리맡에는 호롱 등잔이며 소소한 물건들이 가지런했고 문틀 위에는 길게 선반하나가 달려 있었다. 또 방바닥에는 반으로 접은 얇은 방석이 하나, 그 안에는 화투 한 모가 들어 있었다. 무시로 패를 떼고 마실 오는 친구들과 육백을 치는 그 화투는 할매의 유일한 오락거리였다. 이런 물건들에는 저마다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간직되어 있다. 식구가 없는 집이라 한번 자리 잡은 물건들은 거기 붙박이처럼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데 그것은 할매가 부여한 질서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작은 물건 하나라도 마련되기까지는 할매의 오랜 심사숙고와 심각한 검토와 몇 번에 걸친 확인 과정을 거쳐서야 집으로 들여지는 법이었다. 신식 장롱의 빼닫이는 제각각 쓰임새가 정해져 있었고 그것은 내 기억으로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는데 첫 칸은 귀한 손이 와야 꺼내 쓰는 놋그릇이며 제기 몇 가지가 들어 있었다. 가운데 칸에는 제사에 쓰다 남은, 그래서 다음 제사에 써도 별 탈이 없는 북어며 마른 오징어, 문어 등과 오래 건사해 둘 수 있는 음식들이 들어 있어서 내가 무시로 열어보고 오징어 뒷다리 하나 쯤 몰래 꺼내 먹을 수 있었다. "이 북살 할 넘이 또 뒷다리를 하나 띠 묵었다요. 다음에 씰 긴데 이라만 우째 씨노.“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나는 할매 등짝에 머리나 쿵쿵 박으면서 미안수세를 하면 그뿐이었다. 맨 아래 칸은…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니, 서랍이 두 개 뿐이었던가…? 이단 농 아래 칸에는 할매가 출입할 때나 꺼내 입는 옷가지가 들어 있었는데 아주 가끔씩, 마실 오는 사람이 없어 무료할 때 할매는 그 농을 열어 몇 벌 안 되는 그 옷들을 하염없이 다시 개 넣고는 했다. 비단, 양단, 명주, 그 중에서도 얇게 솜을 두어 포근해 보이는 상아색 으로 바랜 명주 겹저고리가 내 눈에 가장 좋아 보였다. 농 맨 윗단에는 다섯 개의 쟁반서랍이 달려 있었는데 첫 칸은 윷과 윷말, 말라빠진 치자 열매 몇 개, 둘째 칸에는 벼루와 연적, 셋째 칸에는 잡기장…뭐 그랬다. 이 농은 명색이 오동나무 장은 아니어도 문짝에 자개도 박혀 있었고 박쥐 문양 백동 장석이며 은근한 칠 태가 그윽했는데 세월이 한참 흐른 어느 날 시골 동네를 돌며 어수룩한 할매들을 반짝이는 니스 칠이며 녹 안 스는 스텐 양철 장석으로 그저 바꿔 달아 준다고 꼬득여서 백동 장석을 모조리 걷어간 야바위꾼들의 농간에 의해 보기 흉하게 변해 버렸다. 오랜 세월 쓰다듬어 나뭇결에 감돌던 은은한 광택을 싹 문대버린 니스 칠은 볼썽사나운 화장을 한 계집마냥 번들거렸고 도톰하고 고즈넉하던 백동 장석대신 박아놓은 얇은 스텐 양철 쪼가리는 되바라지기만 한 계집아이마냥 반짝거렸는데 나이 들어 외갓집에 갔다가 그걸 본 순간 정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마음속에 늘 그리움으로 남아 있던 음전하던 고향마을 이웃집 처자가 나 모르던 사이에 도시물을 먹어 ‘끓지도 않고 넘은’ 모습으로 껌을 짝짝 씹으며 홰홰 나다니는 모습을 볼 때의 심정이 그럴까. 큰방 옆으로 대청마루와, 큰방보다 한 걸음 반 정도 뒤로 물린 자리에 작은 방이 있었다. 사철 불 넣을 일이 별로 없는 작은 방은 들어서면 늘 서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곡식 자루며 큰방에 두기엔 덩치가 크고 자주 쓰이지 않는 물건들이 간수되던 곳이었다. 작은 방 앞으로놓인 대청마루는 우물마루였는데 집 지을 때 폭이 웬만한 판재를 얻기 어려웠던지 마루청판은 한 뼘 정도 되는 쪽 판자였다. 마루를 닦는 일은 내 차지였다.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로 팔이 뻗히는 한 앞뒤로 쭉쭉 걸레질을 하면서 옆으로 끝까지 갔다가 그 길이만큼 뒤로 물러앉아 다시 반대편 끝까지 가기를 너댓 번 하면 마루를 다 닦을 수 있었다. 마루는 반들거리며 윤을 내고 할매는, “아이고, 칼클키도 닦았구매. 내 강생이 욕 밨구매”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너무나도 무료하여 뒹굴다가 마루판 틈새에 눈을 대고 아래로 바라보면 마루 밑 어둑한 땅바닥이 보였고 왠지 으스스해졌다. 축담 바로 앞에까지 초가지붕 처마가 나 있어 마당에는 낙숫물로 패인 작은 홈들이 옆으로 일렬로 죽 나래비를 서고 정지 앞에는 크고 작은 단지 여남은 개가 키순대로 놓인 장독대와 작은 백철 솥이 걸린 화덕이 한 개 있었다. 자, 다소 길었지만 여기까지 설명한 공간을 덮는 지붕에 이엉을 얹어야 하는 것이다. 길이로 치면 대여섯 먹은 내 걸음으로 여남은 걸음이나 될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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