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해 선생님, 쓰러진 빈 술병을 가로지르는 쓸쓸한 마음의 바람소리를 들으며 안부 여쭈어 올립니다.
숲 속으로 고물고물 숨어드는 부끄러움 가득한 오솔길 대신에 <살풍경>연작에서 보는 것 처럼 편리함과 속도에 미친 현대문명의 탐욕을 보자니 그저 아뜩합니다. 아니 그 탐욕의 촉수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노라면 새가슴이 되어 마구 떨리고 맙니다. 뿐만 아니라 저또한 저 지경을 만든 공범임에 차마 참담하다라는 생각조차 할 수 없어 말을 잃어 버립니다.
하해 선생님, 그래서였는지, 아마 그랬을 것인데... 그 사품에 왠지 <살풍경>과 <마추픽추>를 대하는 불편함 때문에 늘 피해 왔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그 각성을 촉구하는 비수를 비껴가는 비겁함을 조금씩 극복하면서 제게는 보리꺼끄레기같은 그 작품들을 가끔 둘러 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자연>을, <생명>을 갉아먹는 인간 백정들의 이 광포한 망나니짓은 언제쯤 잦아들런지요? 그런 날이 있기나 할까요...
신령스런 산의 가슴에 구멍(터널)을 뚫어도 좋다라고 판결을 내리는 가당찮은 대법원이란 곳이 있는 이 나라에서 우리는 희망이란 말을 함부로 할 수도 꿈꿀 수도 없을 것 같습니다.
흑과 백, 빛과 어둠의 날선 경계가 눈 녹 듯 사라지기를...
그 경계에서 뭇 생명들이 피 흘리지 말기를 기도하면서...
자주 들러 죽비를 맞겠습니다.
잘잘히...
섭
2007-11-08 09:46
형, 참 무거워요.
팔십년을 거치고 구십년을 돌아 이천년을 돌아나와도 무게는
하나도 줄지 않았어요
배에 기름은 끼어 살만한데 변한건 하나도 없지요
내 대가리에도 기름 끼어있지 않나 싶어요
아직은 경계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결국 그것이
하나로 이어지겠지만 초월적 금융자본이 우리 멱통과 정신을
흔들어대고 있는 동안은 정신 바짝 차릴 일이지요
photo21
2007년 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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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동수몰지 ”
정인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