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해 이희섭의 PHOTO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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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서기
작성일 2012-05-18 (금)
ㆍ조회: 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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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글의 제목은 없습니다. ”
 아래 글은 강요배 화백의 그림집 “동백꽃 지다”의 책머리에 올라있는 서경식 교수의 “나는 ‘4·3’을 알지 못한다”는 제목의 추천사입니다.


 나는 4·3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 조선인인데,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아버지의 공장이 있던 조선인 마을에 ‘제주도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고작이다. ‘제주도 사람’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때, 부모님의 말에 무언가 비밀처럼 그늘이 드리우는 것을 느꼈지만 그 의미는 알지 못했다.

 “중략”

 재일 조선인 작가 김석범은 ‘제주도 사람’이다. 1949년 이른 봄, 제주도에서 밀항해 온 친척을 맞으러 그는 쓰시마섬에 갔다. 그는 그곳에서 세 명의 밀항자와 하룻밤을 지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 스물일고여덟 살의 여성에게는 유방이 없었다. 고문으로 도려내어졌다고 그 여성은 담담하게 말했다 한다. 얼마나 큰 고통과 원망을 느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젊은 날의 김석범이 얼마나 큰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1957년에 김석범은 ‘4·3’을 주제로 한 소설《까마귀의 죽음》을 발표하였다. 나는 그 글을 대학생 때 읽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4·3’을 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김석범의 역작은 7권짜리 대작《화산도》이다. 그것을 독파한다고 해도 ‘4·3’을 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미 여든을 넘긴 김석범은 지난해 제주도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초대받았다. 단상에 선 그는 “일본에서 비행기로 제주도에 왔다.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했을 때, 이 활주로 밑에 얼마나 많은 시신들이 묻혀 있을까를 생각했다. 그것을 생각하면…”하고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대로 단상에서 내려오고 말았다. 그 눈물의 맛을 나는 알지 못한다.

 제주도 출신의 소설가 현기영이 수년 전 일본을 방문했다. 그의 작품《순이 삼촌》이 일본에서 번역,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난 그 출판 기념 강연회에 참석했다. 현기영은 조용한 사람이었다. 조금도 흥분하지 않고 오히려 수줍은 듯 이야기하였다. 배로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군 군함이 앞바다에서 섬을 둘러싼 가운데, 섬 여기저기서 초토화 작전의 불빛이 올라간다. 밤바다에 그 빛이 비친다. 무참한 학살과 파괴가 벌어지고 있는데, 앞바다에서 바바본 빛의 아름다움이라니! 강연에서 현기영이 묘사해 보여 준 정경이다. 그 정경의 섬뜩함과 두려움을, 나는 알지 못한다.

 ‘4·3’은 언제나 마음 깊은 곳에 있었지만, 나는 ‘4·3’안다고 말하지 못한다. ‘4·3’이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 그곳에서 어떤 폭력이 휘둘러졌는지, 몇 명의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 그런 사실에 대해서는, 한국 사람들보다 먼저 우리들 재일 조선인은 알고 있었다. 군사 정권 시대의 한국에서는 펴낼 수 없었던 증언집이나 연구서가 일본에서는 간행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4·3’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후의 긴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추천사를 써 달라는 보리출판사의 부탁을 받고 서 교수는 크게 추저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우연히 서울 시내의 한 화랑에서 강요배 화백의 개인전 소식을 듣고 가서 강요배 화백을 만나
 “선생의 미대생 시대는 유신 독재 시대였는데요. 당시 미대에서 어떤 양식을 배우셨는지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질문 뒤에 이어지는 어쩌면 중요할 수 있는 오토 딕스와 조지 그로스의 이야기는 나의 무지와 함께 건너뛰고
  “양식이요? 양식 같은 건 별로 의식하지 않아요. 저는 그저 보는 사람들이 ‘알기 쉽게, 알기 쉽게’ 하는데 마음을 쓸 뿐입니다.”
  이후 끊긴 대화를 이어가려고 서 교수는
  “실은 제가 이번에 추천사를 받아들일까 말까 아직 고민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저는 ‘4·3’을 모르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니
 강 화백이 짧게 답했다고 합니다.
 “저도 모릅니다.”

 이제 다시 원문으로 돌아갑니다.

 뜻밖의 대답이었다. 제주도 출신인 그는 그의 나이로 짐작해 볼 때 ‘4·3’을 직접 겪은 것은 아닐지라도 친척이나 이웃들로부터 ‘4·3’에 관해 틀림없이 들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더랬다. 곧 그 자신이 목격자이거나 그것에 준하는 증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서울의 대학에 진학해 줄곧 서울에서 살아왔던 그가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말하면 8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4·3’을 알기 시작했으며, 그때까지는 아무것도 몰랐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제주도에는 어떤 연령층의 사람들이 적네.”라고 어느 때 깨달았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많은 수가 ‘4·3’때 죽임을 당했든가 도망간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도 그런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완전히 감추어진 역사였다. 자신도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라고 강 화백은 말하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추천사를 써 보자고 결심했다.

 강요배 화백과 나는 ‘4·3’이라는 사건 앞에 나란히 서 있는 것이다. 그것은 상상을 뛰어넘는 사건, 상상하는 것마저 고통인 사건, 그렇지만 상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상상을 타자에게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러한 사건인 것이다. 우리들은 그것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으며 그것을 ‘알았다’고도 도저히 말할 수 없다.

 강요배 화백과 헤어져 화랑을 나온 뒤 출판사 사람이 살짝 가르쳐 주었다.

 “‘4·3’을 주제로 한 작품을 제작하는 것은 강요배 선생님한테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그 일을 위해 사람들의 증언을 듣고, 그것을 작품으로 풀어내는 동안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쳐, 작업을 마무리한 뒤에는 고향 제주도로 귀향해 버렸습니다.”

 마지막 문단은 옮기지도 않고 요약도 하지 않겠습니다. 궁금하면 책을 사 보셔도 되고 도서관에서 빌려 보셔도 될 겁니다. 그러나 다만 시대의 증언자로서 예술은, 예술가는...., 그리고 이희섭 선생님의 사진과 사진적 세계관을 생각해 봅니다.

 
 이 글을 옮기는 이유가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오늘은 5·18입니다.
이름아이콘 이희섭
2012-05-18 19:48
마침내 올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나서기님의 글을 보면서 말입니다...
매년 오월이면 어김없이 연례행사처럼 다가오는 온 몸의 아픔이 올해도 용케 비껴가질
않고 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아예 오월의 첫날부터 높은 강도와 긴시간으로  다가왔습니다.  속으로 "그러면그렇지....그냥 보낼 수 있을라구" 하였지요..


강요배선생의 그림을 처음 만난것은 팔십년의 초반이었고 "현실과 발언"이라는
민중미술모임의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리고는 황석영의 "한씨연대기"라는
소설에 강요배선생이 연필화로 그 소설 속 내용을 그려내었던 것을 본 기억이
강요배 화가와의 첫만남이었지요. 큰 충격과 울림으로 온 몸이 떨렸던 기억이
날카롭게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오월,...그것도 팔십년의 오월은 함께하지 못했던 미안함과 아픔으로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나이또래의 기억속에는 그  아픔은 원죄로 깊은 바닥에
깔려있지요.   아마 내가 사진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은 그 시절의 갚을 수 없었던
부채의식때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겁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며칠동안 부산에서 광주까지   오월마다  여러해  갔다오기도 했지요.  그냥 자동차를 타고 가서 망월동과 광주를 만나기에는 너무나 뻔뻔스러울것
같아서였습니다.   한세대가 흘렀지만 아직도   그곳의 피냄새는 현재진행입니다.
저의 기억또한 그곳에서 머물러 한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지요.

매년 오월 이십칠일에는  저 혼자만의 초혼례를 올립니다.
뭐 별다른 격식이 있는것은 아니고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
그날의 그 새벽을 떠올리면서  숨진 사람들을 하나씩 떠올려보는 것이지요.
역사는 그렇게 잊지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어야   의미있는
역사가 될것이라는 생각에서입니다.

아무 소리없이 그저 조용히  보내려고 이곳에 오월마다 올렸던 각성의 글을
작파하고 있었는데   나서기님이  기어이   불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오월을 기억하는것보다는   오월을 망각하고   버리려고 하고  능멸하는 무리와
세력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맞을거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는 올해도 어김없이 망월동을 찿지 않았으며 축사조차 빼먹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참 모자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존재근거를
생각지 않는 졸렬하기 짝이없는  사이비 장사꾼이지요..   글이 아깝습니다...ㅉㅉ

사진가의 사진집은 흔하지만 미술가의 화집은   참 드뭅니다.
그래서   강요배선생의 화집은  소중한 작업이면서 동시에 고마운  작업입니다.
편하게 앉아서 그림을 보는 고통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웬만하면 사서  보시는것이 좋을듯합니다..

좀 괜찮아 지려나 싶어 뒷산을 잠시 다녀왔는데   그것마저도 힘듭니다.
오월 십팔일이라서 그런가봅니다.   하지만  몸이라도 아프니까 좀 덜 미안합니다.

사진에  대해서는 이제 줄 몇개를 그냥 놓은채  지냅니다.
느껴지는 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있으면 는대로  그냥 흘러가도록 하는것이 맞을듯 합니다.    그냥 흐르도록   하라!!!!!

책 생각이 하나 납니다..
서경식의 의외의 책 하나가 얼마전에 나왔지요.
"나의 서양음악 순례"라는 책인데  보면 도움이 될것같습니다..

오늘은 오월  십팔일입니다.
   
이름아이콘 조르바
2012-05-18 22:36
기억하지 않으면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더 험한 꼴로
역사가는 쓸데없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기억시키는 직업이라고 누군가 얘기 했습니다
기억해야만 되는것을 기억하자고 주장했던 볼온함이
세상을 요만큼이라도 진보시킨게 아니었을까요

오늘은 오월 십팔일입니다
   
이름아이콘 조용원
2012-05-20 09:47
80년 5월 나는 그때 육군 상병이었다. 워카신고 침상에서 잠자던 시절이었지.
전우신문에서는 광주에서 폭등이 일어났다는 기사가 떴었고,
조만간 우리부대가 광주로 내려갈지 모른다는 소문도 무성했었다.

결혼하고 처가집에 인사하러 가는 날이었다.
광주에 사는 큰 동서와 같이 처가집이 있는 전북 순창에서 광주 동서집으로
가는 길에 만장이 수없이 펄럭이는 망월동 공원묘지를 지나게 되었다.

큰 동서가 나에게 말했다.
"경상도 사람들은 전부 저기가서 절 하고 와야 혀"
처형이 동서에게 한마디 한다.
"왜 조서방한테 그런 얘길하냐고, 조서방이 무슨 죄가 있다고..."

나는 순창에서 광주로 갈때마다 망월동을 지나가게 되고,
그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늘 시리다.
   
이름아이콘 이희섭
2012-05-21 09:42
그 때 공수 특전단에 있었던  친구는 그 때 광주에 투입이 되었지.
아주 오래 지나서야 그 친구는 그 당시의 이야기를 조금 풀어놓더만.
동료들(특전단)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였지.
따지고 보면 모두  같은 사람들인데 말이야....
죽음과 죽임이  같은 형제들 손에서 이루어졌으니   그런 비극이 어디있을까..

역사는 그렇게 편을 가른 채 아직도 진행중이고
참척의 아픔은    긴 세월 속에서도 날을 더 세우겠지.

조서방도   어려운 군생활을 했네....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지만   그 경험을 한 군인 모두에게 전두환이
국난극복 기장을 줬다는 말이 있던데... 사실인가?
   
이름아이콘 조용원
2012-05-21 10:29
《Re》이희섭 님 ,
 전두환이가 대통령 되고나서 얼마 있다가 국난극복기장을 주더라. 그걸 자랑스럽게
 군복에 다는 사람도 있었고, 몰래 버리는 사람도 있었지. 군대생활 3년에 대통령이
 세번 바뀌었으니 국난은 맞는 것 같고, 극복은 좀 아닌 것 같긴하다.
   
 
  283
작성자 조르바
작성일 2012-04-17 (화)
ㆍ조회: 863  
http://photo21.or.kr/cafe/?myhomeboard.5317.22
“ 4월 ”
올 4월은 유난히 심하게 우울하네요
얼마전 끝난 선거결과에 아쉬움, 안타까움, 실망감, 분노, ......
소중하게 지내던 사람들과의 제법 긴 별리.
" 찬란한 슬픔의 봄 " 이라고 봄이란 녀석의 성정도 원래 그러한데
이런저런 일들이 밀물처럼 밀려오니 머리속이 뒤죽박죽 엉망진창 입니다
하지만 삶은 비루하더라도 살아내야 하는 것이고
내 인생이 언제는 가지런하게 정리 되었나 자위하며
김치가 시간의 세례에 발효되어 새로운 맛으로 변신하듯
세월에 맡기는 무책임과 헛된 희망에 기댈수 밖에.

4월에  새로 구입한 책을 보니
* 박노자의 " 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 "
* 한병철의 ' 피로사회 "
* 김용택의 " 속눈썹 "
* 문인수의 " 적막소리 "
* 이상국의 " 뿔을 적시며 "
* 문태준의 " 먼 곳 "
6권 중에 시집이 4권이나 됩니다

하지만 난마처럼 뒤엉킨 심사에 시를 읽을 마음이 없네요
저가 " 시를 읽을 마음 " 이라고 표현했는데  중요한 지점이 아닌가 합니다
" 피로사회 "에서도
" 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사색)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다 "라고 얘기하듯이
인디안들이 말을 타고 질주하다가도 잠깐 멈추어
영혼이 따라오는가 살피며 기다리는 시간.
세상의 모든 성소로 가는 회랑를 걷는 시간 ㅡ 성소의 핵심부
절대자와 대면하기 위해서는 생각하고 성찰하는 회랑의 시간이 필수적.
이제는 대도시에 일반화된 아파트는 지독히도 재미없는 공간이란게
사색과 성찰과정의 생략이지요 승강기에서 내려
문을 열면 바로 거실 또 문을 열면 바로 안방.
비록 남루하고 비린 풍경 이었지만 골목길 거쳐 집으로 가는길
한잔 술에 휘청이며 전봇대에 배설(?)하면서 쳐다본 달
한숨과, 회한과, 비탄일망정 짧은 생각의 시간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 시를 읽는 마음 "은 이런 시간들을 기본적으로 품고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요
고요하고, 평화롭고, 따뜻한 가슴으로 마주해야만
극도로 정제된 언어와 까다로운 호흡을 가진
시란 놈이 배시시 웃으며 비로써 열어주지요 그러면
이제 그의 시가 아니라 나의 시가 되지요.

뭔 소리를 찌꺼리고 있는지 무슨 의도로 쓰고 있는지 잡설이 길어졌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사색과 성찰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얘기를 요래 주절주절.
좌우간 그래도 시집을 네권이나 샀는데 한편 정도는 소개해야 예의일듯.
김용택의 " 속눈썹 " 에서 " 우화등선 "으로 질퍽한 봄을 느끼시도록

형, 나 지금 산벚꽃이 환장하고 미치게 피어나는 산 아래
서 있거든.
형 그런데, 저렇게 꽃피는 산 아래 앉아 밥 먹자고 하면
밥 먹고, 놀자고 하면 놀고' 자자고 하면 자고,
핸드폰 꺼놓고 확 죽어버리자고 하면 같이 홀딱 벗고 죽
어버릴 년
어디 없을까


이름아이콘 나서기
2012-04-19 09:16
아~ 사월
잘못 내린 버스정류장같은....
   
이름아이콘 이희섭
2012-04-19 10:01
내 가슴속에
마당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이름아이콘 조르바
2012-04-19 22:07
사월에는 모두 시인이 되기로 했나?
나서기씨, 이희섭씨
단 두줄의 댓글로
나의 저 긴글을 확 날려버렸다
이미 잘못 내린 정류장 어쩔수 없다 근처
마당있는 술청이나 찾아
저만치 가고 있는 봄에게 손이나 흔들어 주련다
   
 
  282
작성자 이승재
작성일 2012-04-14 (토)
ㆍ조회: 978  
http://photo21.or.kr/cafe/?myhomeboard.5312.22
“ 대홍형님 남미누나 잘 다녀오십시오 그리고 꼭 다시 만납시다 ”
김대홍
 - 내게는 없는 누나 그러나 나의 자형


사형제라 하셨죠 사형제 맏이라
어머니 일찍 여의고 남자 다섯
엄마 노릇도 했다 하셨죠
만만한 거 하나 없는 세상
악착같이 버티며 살았다 하셨죠
아득하면 아득한 대로
음악이 있었고
외롭다면 외로운 세상
베개머리 함께 나눌 사람
곁에 있어 견딜만 했다 하셨죠
내 아이도 생기고
돌아보니 저 길, 어찌 살았나
가슴 쓸어내린 밤이 많았겠죠
당신은 누가 보아도 경상도 남자
투박한 말 속
부드러운 사랑 담은 사람
나의 자형, 김대홍


 제 기억이 맞다면 대홍형님과 남미누나를 처음 만난 것은 4년 전 이희섭선생님의 봄학기 수업 때일 겁니다. 그때는 집사람이 수업을 듣고 있던 때라 저는 수업 마치고 천탁의 뒤풀이에 종종 합류하곤 했죠. 대홍형님의 첫인상이 그렇게 호감이 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니, 심지어는 나하고는 잘 안 맞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또 결정적인 것은 은현리의 선생님댁에서 수업 듣던 학생들과 선생님의 지인 몇 분들이 모여 걸죽하게 한 판 놀았는데, 그 때 아마 대홍형님이 술을 많이 마셨던지 그만 제 신발을 신고 가셨지 뭡니까 그런데 제 신발과는 크기 차이가 꽤 나더라고요. 어떻게 이걸 바꿔 신고 가셨지, 하는 생각이 들며 첫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그것에 더하여 대홍형님은 저한테 영 아닌 사람이 되었었죠.

 그런데, 제가 사람 보는 눈이 영 없었던 게 한 번 만나고 두 번 만나보니까 이 분이 의외로 속 깊은 정이 있고 경우가 바른 분이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깊은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한마디로 참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봄학기가 끝나고 가을학기가 시작되었을 때는 우리가 서로를 알고 이해한다할 정도가 되었었죠. 수업이 있던 금요일 수업 끝나고 천탁에서 있던 형식적 뒤풀이가 끝나고 나면 우리들만의 뒤풀이가 시작되었죠. 천탁 바로 길 건너에 있는 GS슈퍼 앞 노상에 대충 신문지 몇 장을 깔거나 아니면 그냥 맨바닥에 앉아 밤이 가는 줄 모르고 술을 마시고 또 이야기를 나누었죠. 새벽 한두시는 예사였고 세시가 가깝거나 넘는 날도 종종 있었죠. 매주 금요일마다 문을 열었던 난장주점은 바닥에서 찬기가 올라오고 옷을 더 껴입어도 추위를 느낄 때쯤 끝이 났죠. 그래도 우리들만의 뒤풀이는 몇 개의 사케집을 옮겨다니며 가을학기가 끝날 때 까지 계속 되었죠. 대홍형님 그리고 남미누나 저희 부부가 평생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살 수 있는 그 가을의 기억을 두 분께서 선물해 주셨습니다.

 제가 지난 기억을 더듬는 것은 대홍형님과 남미누나가 한 3년 먼 곳으로 가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제 송별을 겸한 술자리를 했지만 그래도 아쉽고 아쉬운 마음이 있어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제가 마음 졸이는 건 삼년 후 다시 오신다고 했지만 혹시 더 오랫동안 못 보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과 낯설고 물선 곳에서 건강하셔야 하는데 라는 마음이 한 몇 년 볼 수 없다는 아쉬운 마음만큼 크게 자리하기 때문입니다.

 두 분 건강하게 잘 다녀오십시오. 두 분께서 무사히 잘 돌아오시길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 저희 부부 두 명도 있다는 사실 꼭 기억해 주십시오. 좋은 인연이었고 이 좋은 인연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희섭선생님께. 선생님 이 인연과 만남의 중심에는 선생님이 계시고 선생님의 수업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수고로움과 포용과 이해가 많은 사람들을 안고 끌고 왔습니다. 며칠 건강이 안 좋다는 말씀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건강하셔야 됩니다. 술자리에서 선생님의 술잔을 말린 적이 없고 심지어 선생님의 술잔을 말리는 사람을 말리지만, 선생님의 건강이 어째도 좋다는 그런 생각이 눈꼽만큼이라도 있어서가 아니라 그건 언제까지나 선생님의 자의적 판단과 의지에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선생님 절대 건강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사진도 있고 뭣도 있습니다. 이 말은 선생님께서 더 자주 쓰시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이름아이콘 조르바
2012-04-14 22:45
이 승 재씨
이 공간이 그래도 어느정도는 공적 성격이 있는 것인데
단지 이희섭의 제자라는 명분으로 개인 이름을 호명하며
이별의 정한을 장문의 글로 적는것은 좀 문제가 있지 않나요
야튼 뭐 이왕 밥상은 차려졌으니 숟가락하나 슬쩍

요즈음 갑자기 심하게 우울하네요
영민하고 당당한 박남미와
은근한 유모어로 자중을 확잡는 김대홍과의
비교적 긴 별리
아! 이 가슴의 구멍 메우려면
얼마만큼의 필요할지
정말 봄은 애 오고 지랄이고 꽃비는 내리고 지랄인지
C 8
   
이름아이콘 조르바
2012-04-14 23:01
술한잔하고 치다보께 탈자 오자가 있네요
비밀번호도 잊자뿌고
"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하지 정말 봄은 왜 오고 "
   
이름아이콘 이승재
2012-04-15 09:52
인정합니다.

그래서 제가 술 깨기 전에 후딱 올렸습니다.
이런거 저런거 감안해서...

그래도,,,,
이 공간과 선생님을 통해서 맺어진 인연이니..
빼쪽하게만 보시지는 마시길.....
   
이름아이콘 이희섭
2012-04-15 17:22
긴 시간    먼곳으로 떠나는 소식에  그러지 않아도   맥빠진 정국으로
우울하던참에   더욱   스산한   날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정해진 시간이 흐르면  만날 수 있다는 약속이 있기에
섭섭함을  달래봅니다.
두 분 모두  건강하셔야합니다.
잘 다녀오시고 뜻한바  깊이있는 이룸    이루기를 바랍니다,

승재씨...
그래요 저도   그 부분만   적절히 조절이 된다면 정말 몸과 영혼의 많은 부분들이
더  건강해질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노력하겠습니다.
   
 
  281
작성자 조르바
작성일 2012-04-04 (수)
ㆍ조회: 987  
http://photo21.or.kr/cafe/?myhomeboard.5309.22
“ 대화 ”
삶의 속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머리 굵어진 자식하고
" 대화 " 한다는게 참 어렵습디다 나만 그런가?
하긴 아버지 자격증을 아직 취득하지 못했으니 할말이야 없지만
보통의 대화란 것도 거의 단답형 이지요
" 밥 묵었나 " "늦게 올끼가 "등
최근 비교적 서술형(?) 대화를 요약해서 두 토막

아침 출근준비로 한창 빠쁜시간에 딸애가 불쑥 방문을 열고 뜬금없이 한마디
" 아빠 오징어 무우국 우째 끓이노 "
" 갑자기 오징어 무우국은 와 나도 잘 안해 본긴데 "
" 점심때 애들하고 국 끓일 일이 있는데 내가 한번 해 볼라꼬 아 빨리 "
" 엄마 한테 물어봐라 ' 옆에 있던 마누라는 나는
 오징어 무우국 안 좋아 한다며 자리를 피합니다
" 그냥 오징어 먹기좋을 크기로 짤라서 참기름에 볶다가 물넣고 무 넣고 하면되지 "
" 어떤때는 국물이 맹맹하고 맛이 없던데 "
" 그라면 다시국물을 내라 " 다시 국물을 우째? "
" 응 다시마하고 다시멸치 넣고 한 10분정도 끓이다가 내용물 들어내고
 물 대신 넣어라 많이 끓이면 비리고 재미없다  같은 갯가 것들이라
 오징어하고 충돌하지는 않을끼라 "
 열심히 받아적던 녀석이 방문을 나서면서
" 간단하네 뭐 더 해줄말 없나 "
" 국물 칼칼하게 할라카문 땡초 몇개 통째로 다시물 낼때 넣었다가 건져내고
 간은 조선간장이 없으면 양조간장으로 하지말고 소금으로 해라
 그래야 시원할 끼구만 마지막에 마늘 넣고 파 쏭쏭이면 되겠네 "
 오후 4시쯤 문자 한통이 왔습니다
" 아빠 성공 완존 대박 ㅎㅎㅎ "
 그래 그거라도 도움을 줄수 있어 다행이다

큰애가 직장생활 한다고 한양으로 떠난후 자주 보지못해 좀 섭섭하데요
그렇다고 같이 생활할때 애틋하고 알콩달콩 했던것도 아니었건만
배반을 불허하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란게 그런 모양입니다
저는 딸만 둘이지만 집안일을 애써 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여자는 김장 30번만 담그면 늙는다는 얘기도 있듯이
한국의 조건이란게 가사노동에서 여자는 불리하다고 인식하고 있고
지 살림하면 재미도 없는일 지겹도록 할낀데 우리하고 있는동안
편하게 있다 가야지 하는 생각에.
어느날 제 속마음 하고는 어긋나게 심술적 장난끼가 발동했습니다
" 야 최유진 니 독립해서 살아라 "
" 갑자기 왜 "
" 아빠가 본께 이제 니도 다 컷는데 집안일을 너무 안 하는것 같다
 스스로 혼자 살아보라고 니 방청소는 물론 속옷도 잘 안 빠는것 같고
 설거지도 통 안하고 너무 불공평 한거 아이가 엄마도 직업이 있는데 "
요게 잠깐 생각 하더니
" 아빠 말이 전혀 틀린것은 아인데 좀 봐주지 부모 좋다는기 뭐꼬
 나도 피곤 하거던 "
" 우리집에 안 피곤한 사람있나 나도 피곤 하거던 "
 녀석의 마지막 대사가 압권 입니다
" 난 아빠 엄마가 쫓아내도 절대 안 나갈꺼다 밖에 나가 생활하면
 돈 못 모은다 뭐 시집갈 비용은 손 안 벌리고 내가 알아서 하께
 나중에 외손주나 좀 봐 주실라우 "
 헐헐 이걸 영악하다고 해야하나 대견하다고 해야하나
 되로 주고 말로 받은 뭔가 손해본 느낌 야튼
 작은딸은 독립안하고 같이 산단다 만쉐  만만쉐 !!!

뱀발 ; 연 이틀 뭔 일이냐고         C발  외로워서
이름아이콘 나서기
2012-04-06 08:48
아~ 영감님들 왜이러시나
봄 햇살이 마음 천장에 구멍을 숭숭 뚫고 있나?
'씨"자도 나오고 '발'자도 나오는걸  보니
어서 빨리 경로위안잔치라도 한판 벌여야 하나?
   
이름아이콘 이희섭
2012-04-06 09:09
따끈하게 끓여   땡초를 총총 썰어넣은 오징어국으로 해장을 하고 싶은 아침입니다.
지난 겨울에  자갈치를 몇번 갔는데 그 때마다   싱싱한 오징어가 너무나 싸게 나와
국뿐만 아니라 데쳐서 회로 먹기도하고   껍질을 벗겨  젓갈을 담기도 하였지요.
나 혼자만 유달리 오징어를 좋아해  만원어치 사오면   며칠을 호강하며  먹습니다.
콜레스테롤이 많다지만   그까짓거...일단   맛이 좋은데 어찌합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자만 좋아하는 음식은 누군가에게 시키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먹고 싶은것은 내가 사서 내가 요리해서 나 혼자 먹는다....!!
이것이 저의 신조이지요...  누군가에게 시키면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음식의 맛도 내 맘에 잘 들지 않아서입니다.
그래서 저보고들  참 까탈스럽다고 합니다.  그래도 민폐를 끼치지 않는것만해도
그게 어딥니까..
특히 국수는 남이 삶아주면 제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미묘한 삶기의 타이밍을 도저히 나 말고는 누구도 맞추질 못하니까요,..
이런 성정은 아마   부엌일을 남녀구별없이 해오신 아버지의 영향인것 같습니다.
김장. 간장과 된장담기 등의 살림살이의 가장 중요한부분들을   아버지가 도맡아
해오셨지요..실력도   아주 뛰어나구요...ㅎㅎ
저도   거의 그 수준으로 하고 있습니다...이런걸 가풍 이라고하나요?
고구려의 피가 면면히 흐르는   대장부의 집안풍경입니다...^^
유진이와 우인이의 아기때 모습들이 훤히 떠오릅니다...
조그맣고 예쁜 아이들이 이제는 말처럼 커서  제각각  스스로의 길들을
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참 좋습니다.
이제 곧   형은 할아버지가 되겠지요...ㅎㅎ
그래서 봄은 오고   또 내일모레 크리스마스는 닥쳐옵디다...
   
이름아이콘 조용원
2012-04-10 12:45
조르바 성님! 딸 자랑에 정신이 없으시네요.
딸 없은 저같은 사람은 노년이 무척이나 쓸쓸할 것 같습니다.
   
 
  280
작성자 조르바
작성일 2012-04-03 (화)
ㆍ조회: 750  
http://photo21.or.kr/cafe/?myhomeboard.5307.22
“ 영화 2편 ”
일주일 간격으로 영화 2편을 봤습니다
그것도 " 다큐멘타리 " 로
" 달팽이의 별 "  과  " 말하는 건축가 "

" 달팽이의 별 '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장애를 가진 사내와
척추장애라는 아주 작은 신장의 여자가 살아가는 일상의 얘기 입니다
흔히 장애인 이라면 동반하기 마련인 " 연민 " "동정 "의 일방적 덧칠을
제거하고자 엄청 노력을 하셨지만 보는 내내 안타깝고 짠한 심정은
어쩔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초점은"소통" "사랑 "에 맞추고 있는것 같았습니다
손등에 손가락으로 모르스부호 같은 동작으로 의사를 힘겹게 전달하는
과정은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관람후 근처 이기대로
봄소풍(?)을 가는 차안에서 어떤 녀석이 한마디 했습니다
" 아! 정말 쪽 팔려서 "
멀쩡한 눈을 가지고, 멀쩡한 귀를 가지고, 멀쩡한 입을 가지고
사는 평범한 사람들을 쪽 팔리게 하는 영화 인것은 분명했습니다
이기대 바위에 앉아 쪽팔림의 부끄러움을 잊기위해
우리는 부지런히 열심히 술을 마셨습니다
저는 멀쩡했는데 봄바다가 먼저 취했습니다

" 말하는 건축가 "는 정기영이라는 건축가의 죽음 일년전 기록입니다
영화는 "건축(문화)"의 근본에 대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외연을 넓히면 건축, 예술, 문화 ......  그리고 우리들의 삶
최근에 읽은(최인훈의 바다의 편지) 책에 인간은 원초적으로
불안과 공포를 지닐수 밖에 없는 동물인데 이것을 달래주려 고안한게
"종교"와 "예술"이 아닌가 하는 귀절이 생각 났습니다
저가 요 몇년 붙잡고 있는 화두(?)를 영화속 정기영씨의 대사로 기억해 내자면
" 사람이 늙어가면 철학적이 될 필요가 있는게 아닌가요
가족은 무엇인가, 친구는 무엇이고, 예술은, 종교는 또 무엇인가...
이것은 인간이 위엄을 지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죽음과 대면하기 위하여 "
해질녁 15평 아파트 창문으로 들어오는 한줌의 햇살을 고마워했던 사내
시대와 건축을 온몸으로 고민하고 아파했던 사내의 잔영이
오래동안 가슴에 머물것 같습니다

한동안 소통, 사랑, 건축, 예술, 문화 이런 단어들의
근원을 파고던 화면에 쪼매 심란해 졌습니다 안그래도
바람은 사납고 꽃들은 분분하고 마음은 먹먹한 봄인데

최근 새 앨범(바다로 가는 시내버스)에서 무공해 가객 정태춘이
노래한 박남준의 시로 마무리 합니다

섬진강 박시인


연분홍 봄볕에도 가슴이 시리더냐
그리워 뒤척이던밤 등불은 껐느냐
누옥의 처마 풍경 소리는 청보리밭 떠나고
지천명 사내 무릎처로 강바람만 차더라

봄은 오고 지랄이야, 꽃비는 오고 지랄
십리 벗길 환장해도 떠날 것들 떠나더라
무슨 강이 뛰어내릴 여울 하나 없더냐
악양천 수양 버들만 머리 풀어 감더라

법성포 소년 바람이 화개 장터에 놀고
반백의 이마 위로 무애의 취기가 논다
붉디 붉은 청춘의 노래 초록 강물에 주고
쌍계사 골짜기 위로 되새 떼만 날리더라

그 누가 날 부릅디까, 적멸 대숲에 묻고
양지녘 도랑 다리위 순정 편지만 쓰더라




이름아이콘 이희섭
2012-04-04 09:03
아직도 저는 쪽팔림을 잊기 위해   열씨미    아주 열씨미   술마시고 있고
술마시는게 쪽팔려 또 마시고 있는 중입니다.
뭔가 거대담론을 고민하고  나타내려고   고민한 과정들이  흔들리는 봄날 바람앞에서
정말 좆도 아닌것 같은 생각이 들어   다시 쪽팔리고 있는 중입니다.

두편의 기록영화를 연짱으로 보고난 후   그 충격과 여파가 아직도 가시질 않고
있습니다...
영화관 뒤편의 어둔 공간에서    사람살이의 지난함과   긍휼과
죽음의  과정을 보면서     눈물이 흐르는 것은   봄날탓인지
못남탓인지 참        구분이 안갑니다..
음악이 조금 구원해 줄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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