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에 젖은 7번국도 월송정 ”
비는 내리고 새벽 6시 12분 부산대 예술아카데미의 33인은 동래역을 떠납니다
경부 고속도로 건천을 지나 포항을 에둘러 숨을 고르기 위해
화진 휴게소에서 잠깐 긴장의 끈을 내려 놓습니다
화진에서 부터 동해는 교복속에 감추어진 예닐곱 소녀의 부끄러움처럼
살짝 모습을 드러냅니다 구름인가 해무을 안고 있는 수평선은
탁 터인 풍광으로 박하사탕마냥 가슴을 훑어 준다는 기분은
뭐 그렇게 억하심정을 지니고 사는 일상은 아니지만 아마 그동안
겨울이라는 계절이 주는 억압을 봄바다가 살포시 위로해 주는건 아니었을까요
바다는 무엇인가 그리움인가, 아득한 절망인가, 허무와 슬픔인가,
이나이 이순간에 새롭게 나에게 다가오는 바다의 느낌을
거부하지 않고 흔쾌히 받아 들입니다 동해바다와의 멋진 해후를 기대하며
약간의 설레임으로 축산, 후포 거쳐 한 시간 남짓 " 월송정 " 에 도착했습니다
아! 비는 하염없이 계속 내리고 정자에서 우리들의 일용할 양식 도시락으로
추운 아침을 해결하고 발전기와 노트북, 슬라이드판 등으로 무장한
최첨단 디지탈 장비들이 동원된 아나로그 사진강좌가 시작 되었습니다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신윤복과 변상벽을 모셔와서 강사는 북, 장구 등으로
품물을 치며 열성적으로 신명을 돋구었습니다 한판 잘 노시라고.
금강산, 새한도, 소나무, 닭과, 병아리가 화면에 질퍽하고
강사의 목소리는간곡하게 진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림이란게 풍경과 사물이 화가의 심장에서 한 번 걸러져 나온 것 이라면
겸재의 박연폭포와 변상벽의 닭과 병아리의 세밀화는
사진이 지녀야할 미덕을 친절하게 안내하는것 같았습니다
현미경같은 꼼꼼함과 섬세함 그것을 뛰어 넘는 혹은 함께가는 정서의 아름다움
아! 이것이 어찌 사진의 경우 뿐 이겠습니까 우리는 열심히 땅을 걸어가다
때로 하늘의 별을 바라다 봐야 하듯이 현실과 이상,일상과 꿈의, 마찰과 조화
비는 사납게 내리고 추위가 집중력을 방해 하기는 했지만
사진과 삶의 등가는 봄비에 젖어 처연 했습니다 강의내용중
한국인의 삶에 벼에서 나온 쌀의 주식으로 인한 어떤 원초적인 유전자가
심어 질수 밖에 없었다면 소나무에 대한 절절한 애정은 어떤 의미 이었을까요
곁눈으로 바라본 월송정 소나무숲의 소나무는 어느것 하나 근심없이
자란 놈이 없었습니다 비틀어지고 꼬불어지고,. . . . 아마
우리민족 삶의 여정이 가난과 차별, 멸시와 굴욕, 전쟁과 탄압으로 인한
핍진함이 소나무가 보여주는 모습의 동질성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상가집에서 슬피우는 조문객은 자기 설움이 많아서 이듯이.
고려후기 목은 이색이 어렸을때 상대산에 올라 병곡 앞바다에서 고래가
하얀 분수를 뿜으며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지엇다는 " 고래불 '(불은 뻘의 옛말)
해수욕장으로 향해 갑니다 비는 그쳤지만 술에 젖은 봄바다의 거친 바람은
20리 백사장을 질주 합니다 파도와 입맞춤하는 지점의 짧은 단애, 단구
단절과 끝을 알수없는 모래사장의 이어짐 파도의 갈증과 또 다른 허기짐.
우리의 인생도 저렇게 끊어짐과 이어짐으로 살아가는가 어느 팝송의
노래말처럼 친구야 바람만이 아는가 바람만이 아는가
우리가 살아내야하는 삶의 그림자를.
센치한 가슴을 만지작 거리면서 전통 한옥마을로 접어 들었습니다.
전통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까칠한 질문은 일단 밀쳐놓고
권위주의 정부의 이념에 복무했던 부끄러운 과거도 지난일로 치부해 버리고
순한 마음으로 마을 길을 산책 했습니다 인상적인 지나치게 낮은 담장.
산 바로 아래 인접한 지붕선들의 어깨동무가 정겹게 보였습니다
가장 부유했을 마지막 집의 정자에서 한 눈에 바라보이는 들판에는
아직 한가로움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정자에 앉아 하인이나 소작인들의
일상을 감시 했을 사대부 양반의 모습을 상상하며 우리는 높이의 권력에 대해
높이와 비례하는 권력에 대해 시린 농담을 했습니다
늦은 7시쯤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는 여행의 아이러니처럼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 왔습니다
류광춘, 노진섭, 두분 정말 애 많이 쓰셨습니다
당신들의 수고로움으로 우리 모두는 편안하고 즐거웠습니다
이희섭
2011-03-23 07:38
비와 바람과 추위가 긴 시간 기억에 남을듯합니다.
그곳의 바다와 나무들이 그정도 속살을 드러내 보여준것은 아무에게나
함부로 열어주지 않기 때문일겁니다.
함께 해 주셔서 고마왔습니다.
photo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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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에 젖은 7번국도 월송정 ”
이희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