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들/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어느 누구 하나가 홀로 일어나/아니라고 말할 사람 누가 있겠소?”
한국 프로테스트 포크의 대명사 김민기가 부른 ‘친구’의 한 구절이다. 김민기는 이 노래를 1971년 발표했다. 같은 해에는 ‘3선 개헌’을 한 후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치렀고 박정희 후보가 53%의 득표를 해 당선됐지만 부정투표 시비가 일었다. 이듬해에는 ‘7·4남북공동성명’과 ‘10월 유신 선포’가 있었다. 1974년 1월 8일 이른바 ‘긴급조치 1호’가 선포됐다. 격동의 시절이었다. 이 때 발표된 그의 음반에는 ‘친구’, ‘아침이슬’ 등 주옥같은 포크음악이 실렸고 두 말 할 나위 없이 발매 즉시 압수 조치됐다. 김민기의 이 음반은 훗날 1987년에 해금됐고 지금도 한국 대중음악사의 명반으로 기억되고 있다.
정수라가 ‘아, 대한민국’을 부른 것은 1984년이다. 이 노래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이렇게 우린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라며 당시 불황을 뚫고 나가고자 노력하던 집권 여당의 경제발전 논리를 대변했다. 올림픽을 앞둔 그 시기에 ‘아, 대한민국’은 어느 방송이나 행사 때마다 지겹도록 나왔다.
정태춘은 1990년에 같은 제목의 ‘아, 대한민국’을 불렀다. 그의 대한민국은 6년 전 정수라의 그것과 다르다. 그는 대한민국을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가 쫓겨난/힘 없는 공순이들은 말고/하룻밤 향락의 화대로 일천만원씩이나 뿌려대는/저 재벌의 아들과 함께/우린 모두 풍요롭게 살고 있지 않나/우린 모두 만족하게 살고 있지 않나/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이라며 분배 없는 성장의 허구를 강하게 비판했다.
두 노래에는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극단적으로 다른 두 가지 시선이 담겨 있다. 한 사람은 노력만 하면 모두를 얻을 수 있는 기회의 땅으로, 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 모두 만족하게 살지 못하는 땅으로 각각 묘사했다. 정태춘의 음반은 공연윤리위원회의 수정 지시를 거부하고 불법음반을 제작해 배포 했다. 이후 검찰에 기소되면서 7년여의 공방 끝에 1996년 헌법재판소로부터 공연윤리심의위원회의 ‘사전심의’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받아냈다.
1960년대 전세계의 젊은이들이 열광했던 비틀스(Beatles)와 함께 또 한 사람의 영웅이었던 밥 딜런(Bob Dylan)이 한국에 온다. 그의 나이는 올해 69세다.
밥 딜런은 1963년 베트남 전쟁을 겪으며 의식의 카오스에 빠진 미국 젊은이들에게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라는 노래를 선사하면서 반전운동의 전면에 나섰다.
“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그 사람을 사람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비둘기 한 마리가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건너야 모래 위에서 편히 쉴 수 있을까/얼마나 많은 포탄이 날아가야 영원히 그 포탄을 금지할 수 있을까/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만 알고 있지” 그의 명곡 ‘Blowin’ In The Wind’의 한 대목이다.
그는 인종차별과 전쟁, 핵에 대한 반대 메시지를 노랫말에 담았고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과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의 노래는 60~70년대 미국과 유럽의 반전시위 현장에서 즐겨 합창됐으며, 김민기도 그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그의 노래는 2008년 퓰리처상에서 “걸출한 시적 호소력”이라는 찬사와 함께 특별언급(special citation) 부문을 수상했으며, 그의 노래 ‘라이크 어 롤링 스톤’ 중 “가진 것이 없으면 잃을 것도 없다”라는 가사는 2008년 미국연방대법원 판결에 인용되기도 했다. 지금도 밥 딜런은 미국 대중음악사에 우뚝 서 있다. 그는 당대 미국 젊은이들의 정신적 표상이었고 미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 가수가 한국에 온다.
밥 딜런의 내한공연 소식을 들으며 몇 가지의 우울한 생각이 스친다. 그의 노래는 사회변혁의 큰 방향을 제시했고 대중 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전파됐다. 베트남 전쟁을 겪으며 방황하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진로를 제시했고 젊은이들은 딜런의 메시지를 통해 정의와 희망을 찾아 나섰다.
우리는 어떠했는가. 3공화국에서도 5공화국에서도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메시지를 던지는 가수들의 혀를 동여맸다. 가수뿐만 아니라 시인, 소설가, 심지어는 행위예술가들 조차도 창작활동을 제한했다. 이른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던 사회였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 역사와 연관 지어 생각한다면 크게 이상할 바 없지만 지금도 체제 비판 발언에 대해서는 거부반응을 보이는 전통은 여전하다. 범위를 좁혀서 생각하면 우리 생활 주변에도 이런 모습이 심심찮다. ‘忠言逆耳以於行’(충언역이이어행). 충성스러운 말은 귀에 거슬리게 들리지만 행동하기에는 이롭다. 만고의 진리다.
세계 최고의 포크가수 밥 딜런의 공연이 한국에 던질 문화적 파장은 무엇일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 대답도 바람만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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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만 아는 대답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