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해 이희섭의 PHOTO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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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138
작성자 이희섭
작성일 2019-10-2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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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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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희섭15회사진전 "낡고 삭은"알립니다. ”

2019.11월7(목)-11월13(수)
함양문화예술회관 전시실



Memento Mori

오랫동안 묵혀두었다
이 작업에 대한 생각도 오래 묵었고  준비해온 재료들도 낡고 삭아 이제는 더 이상
놔둘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제야 밖으로 내보내게 된다.
열다섯번 전시중의 하나이다.
 
아주 오래전  은현리 시골집의 텃밭에서 수확하고 난 후의 스산한 초겨울의
아침에 고춧대를 정리하고 태울 준비를 하다가  병들고 삭아 선택받지 못한 삭정이들을  
보면서  이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지, 제외된 것들은 의미가 없는 것들인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고 언젠가는 내 사진의 한 물목으로 삼아 의미를 살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때부터 낡고 삭은 것들을 모아두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들은 바래어지어
바스라지고 본래의 형태에서 서서히 벗어난다. 그렇게 이 질료들은 나의 보관함 속에서 미이라가 된 채 긴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이제 그것들을 꺼내어 조심스럽게  빛을 비추어 되살리는 작업을 하고 사각의 길쭉한 인화지에 사진의 형태로 만들어내게 되었다.

반짝이는 것, 화려한 것, 향기로운 것, 달콤한 것, 구멍이 패이지 않은 것, 길쭉하고 미끈한 것, 이런 특성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들은 죽음과 패망을 떠올리게 하면서 피하지만 아! 삶이란게 결국 이것들과 만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로마 식민지에서의 재화와 승리를  지키기 위해 이 경구가 사용되었지만  내게는 쭈그러지고 구멍뚫린 것들 또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에 더 방점이 두어진다.
역설적으로 우리는 죽음을 완성하기 위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시장에 걸릴  마흔아홉개의 사진은 다른 세계의 완성을 위해 떠나가려는 우리의 영혼일 수 있는 것이다.



Noli  me  Tangere

예수가 부활한 사실을 모른 채 막달라 마리아는 시신에 바를 향유를 들고 무덤에 갔으나
시신이 없어진 사실을 알고는 깊은 절망에 빠진다.  그 때 부활한 예수가 ‘마리아야’하고
부르자 마리아는 깜짝 놀라  이 장면이 정말인지 확인하려고 손을 뻗어 예수의 몸을
만지려고 한다. 그 때 예수가  ‘내게 손을 대지 마라!(Noli  me  Tangere)’라고 말한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많은 화가들이  이 상황을 그림으로  남긴다.
이 문장은 여러 가지 의미를 전달한다.  단순히 몸에 손을 대지마라는 뜻 이상의
의미가 있다.  몸이 되살아난 부활을 믿지 못하는 막달라 마리아는 적어도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촉각을 통한 만지는 행위였을 것이다. 하지만 부활이라는 것은 단지 몸의 다시 태어남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정신의 부활이기도 한 것이다.  만져보아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마리아는 단순이 떨리는 손으로 살짝 만진 것이 아니라 온 힘을 다해 거머쥐고 놔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나에게 손을 대지 마라!”고 말한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여태껏 소중하게 생각해왔던
과거의 집착과 욕심에서 벗어나라는 요구일 것이다. 부활한 예수는 촉감으로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대상이 아닐뿐더러   자신들에게 익숙한 과거의 모습도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의 습관과 욕망으로는  새로운 세상을 이해할 수도,만들어 낼 수도 없다는 것이다.

낡고 삭은 이번 작업의 내 사진들은  예수의 부활에 견줄 수야 없지만  어쨌든
나의 낡고 삭은 스캐너 위에서 몸을 눕혀   이 곳에서 되살아난 셈이다.그것도 몸을 두 번 뒤채어 앞과 뒤를 나란히  한 공간에서 이어 붙이고 컴퓨터의 포토샵작업 속에서 수없이 많은 변형과 수정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다른 형태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살아났지만 이것들은  내 사진 속에서 전혀 다른 세계를  지향한다.
손으로 만져서 확인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것이다.
곰팡이와 벌레와 시간의 도움으로 처음의 형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질료로 태어난  것을 내가 조작한 기계장치의 도움을 빌어 다시 태어난 것이다.  형태를 빌어 정신을 나타낸(以形寫神)셈이다.  

이 작업을 위해 통상적인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고 스캐너를 사용하였다.
평판의 유리판 위에  몇 년간 묵혀두었던 다양한 상태의 고추와 가지를 눕혀 앞면과
뒷면을 따로 스캔하여 이 두 개의 이미지를 포토샵에서 내 생각대로 이어붙여 완성하였다. 스캐너의 특성상 극히 얕은 피사계심도로 인해 유리판에 닿지 않는 부분들은 흐리게 나타나지만 오히려 그것들이 형상을 이루어내는 데 내 의도와 더 적합하였다.
이미 재료들은 오랜시간 탈색되어 무채색에 가까워졌지만 색의 나타남을 제한하였다.
재료의 선택은 수확이 끝난 경작지에서  다양한 모양의 떨거지들을 포대에 담아와
여러 번의 겨울과 여름을 나면서 기온과 습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된 것들 중에
제법 온전하게 남은 것들을 골라 선택하였다.   어떤 것들은 과산화수소수와 암모니아수를 혼합한 용액에 며칠간 담궈 탈색이 된 것을 건조시켜 스캔작업에 사용하였다.
긴 시간 모진 작업에 시달린 재료들에게 송구스럽고 이제야 편하게 땅으로 돌려보내게 되었다.


foto21@hanmail.net
  137
작성자 photo21
작성일 2018-04-01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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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266  
http://photo21.or.kr/cafe/?myhomeboard.6174.2
“ 이희섭 사진전 "닻 돛 덫 2" 전시회 알리며 초대합니다. ”

이희섭의 열 네  번 째 사진전  “닻  돛  덫 2”

전시일시: 2018년 4월23(월)-4월30(월)
전시장소: 함양문화예술회관 전시실.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필봉산길55.)

오래전.
2007년 5월 7일  내 홈피에 첫 사발이가 등장했다.
부산 근처의 송정 바닷가의 방파제 근처였다.
그 후  집중적인 이 사발이에 관한  작업이 이루어졌고 여러 가지 사진적인 시도들이
이루어진 흔적들을 찿아볼 수 있다.  밤에 이루어진 긴노출, 카메라의 의도적인 떨림,
초점의 어긋남, 밤에 이루어진 라이트페인팅(그 당시에는 이런 용어가 있다는 걸 몰랐다)
새벽녘의 광선을 이용한 사진들.....그리고는 4*5대형카메라를 사용한 작업들...

한 컷으로 시작하였던 이 사발이 시리즈의 사진은 시간이 흐르면서 제단화인 딥틱과 트립틱에
느낌을 받아 두 장을 이어붙인 것, 그리고 석장.. 그렇게 점진적인 이미지의 확장을 이루다가
비용의 부담으로 4*5필름작업을 포기하고 디지털 사진기로 옮겨가면서 수십장의 이미지를
이어붙여 상하좌우로 확장된 지금의 사진을 얻게 되었다. 포토샵에 내장된 이어붙이는 장치가
이것을 가능하게 하였고 기가단위의 파일은 중형디지털 사진기 이상의 확장된 이미지를 구현하게 되었다. 궁한 자가 판 우물에서 물이 펑펑 솟아난 셈이다

이 소재에 이렇게 오랫동안 천착해오면서도 그리고 대형필름과 디지털 파일들을 쌓아두고도
십년이 지난 작년에야 이 사발이를  정리하여 전시를 하였다. 그런데 정작 과거의 수많은 필름들은 하나도 이 전시에 쓰질 않았다. 오직 새로운 방식인 좌우확장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발이들을  찍은 것들만 전시장에 걸었다.  관람객은 마을사람 몇 분과  열손가락에 꼽을만큼의 숫자만큼 오고갔다.  참으로 담담한  소읍의 풍경이 되었다.

작년의 전시를 마치고 한동안은 뭔가를  이룬 듯 한 포만감을 가졌지만 곧  사발이들이 유령처럼 내 머리 속에서 휘젓고 다녔고  그래서 오랫동안 오고갔던 이 땅의 동쪽과 서쪽 남쪽 구석구석을 또 다시 찿아가 그곳들에 다시 카메라를 들이대었다. 없던 곳에 이 구조물들은 새로 생겨나 있었고 더 높고 더 크게 확장된 이것들은 우리들 안전을 지켜내는 방파제라는 느낌보다는 더 자라난 불멸의 거대한 뿌리라는 느낌을 가졌다  
사발이들은 왼쪽오른쪽위아래로 자신의 몸통에서 돋아난 뿔의 구조물로 지극히 단순하게 확장된 결합의 구조물을 무한대로 반복하면서 증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이것들은
애초에 이것들의 목적인 재난의 방지라는 기능을 넘어서서 영토의 확장이라는 자신만의 고유한 기능을 창조하여 자생적으로 꿈틀거리면서 확장해 나가는듯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네 개의 뿔로 성형된 사발이는  애초에 누가 그것을 만들었는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땅과 바다에 던져지는 순간 어떤 곳에서도 균형을 절대 잃지 않고, 서로 만나는 순간 중력을 이용한 자신의 무게만으로 단순한 물리적 결합을 하면서 동시에 돌이킬 수 없는 욕망확장의 화학적 결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 사진기가 노려 본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확장의 논리로 사발이들은 무한증식하고
그것들은 아무런 도움 없이도 트랜스포머처럼 자유자재로 교묘하게 은밀하게 스스로의 땅을
지배하며 자라나고 있다는 것.  이 내용을  시선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을 무한히 확장시키는
수십컷을 이어붙일 수 있는 나의 촬영형식은  이 사발이들의 욕망구조를 정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형식으로 내게 왔다. 사발이의 욕망배치는 내 표현의 욕망배치와
일치하여  이  콘크리트 시대의 욕망배치를 드러낼  수 있는   내 사진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게 되었다.
앗!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사발이들은 내 안의 지배의 욕망과 확장의 욕망이라는 것의 거울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에 다다른다.  
내가 덫에 걸린 것이다.

내 컴퓨터를 들여다보니 이번의 전시를 위한 폴더에 41055컷의 사진들이 들어있고 2테라바이트의 용량을 차지하고 있었다.  이 원재료를 이용하여 수 백 개의 완성된  긴 사진들을 만들었고 이 중에서 여러 장을 골라 전시에 건다. 작년  전시 이후에 촬영된 것들만 선정하여 작업한 것들이다.
짧은 사진이 2미터가웃 넘고 긴 것은 5미터정도 까지 이른다.
사진이 길어 액자를 할 형편이 아니라서 전시장 벽면에 핀으로 고정한다.
모니터만으로 보기에는 큰 용량의 섬세함을 놓치기 쉬워  전시장에서의 일독을 권한다

메일 주소는 foto21@hanmail.net  이다.
이희섭의 열네번 째 사진전시회에  사진 사랑이 깊은 분들을 머리 숙여 초대합니다.

화환, 꽃, 총, 대포,  정중히 사양합니다. 몸만 오시면 됩니다.
별도의 열림 행사는 갖지 않습니다.

  136
작성자 photo21
작성일 2017-06-01 (목)
ㆍ조회: 389  
http://photo21.or.kr/cafe/?myhomeboard.6063.2
“ 닻 돛 덫 사진 올렸습니다. ”
전시를 잘 마쳤습니다.
"이희섭의 사진세상"  제일 아래쪽의 "닻 돛 덫"에   전시장에 걸었던 사진 스물일곱점과
걸지 않았던 미공개 작업들을 모두 함께  올려두었습니다.
프린트된 넓고 긴 사진들을 직접  보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생겨 아쉽긴 하지만
모니터 위에서라도 제 사진들을 보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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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희섭
작성일 2017-04-1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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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454  
http://photo21.or.kr/cafe/?myhomeboard.6002.2
“ 이희섭 사진전"닻 돛 덫" ”



전시제목:   닻   돛   덫  
          이희섭 사진전

일시.  2017.5.24.-5.31
장소.  함양문화예술회관 전시실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필봉산길 55.  055-960-4540
내용.  C프린트   100cm*300cm-500cm  27점
                       



이 땅의 전국 바닷가에 펼쳐져있는 사발이(테트라포드라고도 말한다)에 대한 기록이다.
항구 또는 사람이 살고 있는 바닷가에 파도의 영향을 줄이거나 파도의 힘을 줄이기 위해 겹겹이 줄지어 쌓아놓았으며. 인간의 영토 확장의 의지가 조금이라도 미칠 수 있는 바닷가 어느 곳에서라도 떼 지어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짧게는 십 여 미터에서 길게는 수 백 미터 또는 수 천 미터의 길이로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일단 이것이 쌓이면 파도가 가지는 극한의 힘이 현저히 감소되어 인간이 거주하거나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구조물, 건축물들이 보호되는 듯 보인다.  바다 한 가운데에 섬처럼 덩그러니 줄지어 쌓여있는 것들과  땅과 붙어서 있는 것들 등 다양한 양태로 존재한다.   정면에서 쳐다보면 발 세 개가 보이는듯하지만 뒤쪽으로 발 하나가 붙어 있어서 발이 모두 네 개다. 그래서 4를 뜻하는 Tetra와 발을 뜻하는 Pod가 합쳐져  Tetrapod라고 하며 ‘사발이’로 나는 번역한다.  이것의 재료는 콘크리트이다. 쇠로 만들어진 거푸집 세 개를 볼트로 조립하여 그곳에 생긴 빈 공간에 시멘트를 부어  얼마간의 굳는 시간이 지나  거푸집 세 개를  떼어내면 우리가 보는 그 사발이가 완성된다. 만드는 곳은 주로 바다 근처의 비어있는 빈 터에서 제작되고 이것들은 지게차나 크레인을 동원하여 바닷가로 옮겨가서 쌓이거나 바지선에 실려 가서 필요한 곳에 부려지게 된다.  특별하게 쌓는 방법 없이도 그저 놓기만 해도 서로 이빨들이 맞물려, 제자리에 놓여지게 되는 순간 자신의 몸무게에 상하좌우에 놓여있는 다른 녀석들의 무게까지 강고하게 작용해  웬만한 외력에는 끄덕도 하지 않는 결속력을 가진다. 사발이의 힘의 원천은 중력을 이용한 자신의 몸무게이다. 바다의 깊이와 파도의 세기에 따라 다양한 크기의 사발이를 사용하는데 2톤 정도에서부터 시작하여 삼십톤 또는 오십톤 정도의 무게까지 여러 가지가 제작되어 사용 된다.하지만 파도의 힘은 어떤 때는 어마어마하여 수 십 톤의 사발이 여러 개를  항구의 안쪽 깊숙한 인가까지  공깃돌처럼 날려버리는 일도 잦다.

오래전 ‘마추픽추’라는 제목으로  이 땅의 시멘트로 만들어진 건물의 먼 도시의 풍경을 전시하고 난 후 부산의 남쪽끝단인 송도에서부터 시작하여 사진 찍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울산까지 바닷가의 작은 포구들을 샅샅이 찿아 기획촬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이런저런 풍경들을 만나면서 포구의 사발이들 을 접하게 되었는데 어둠 속에서 만난 이것들의 모습은 처음에는 기괴한  시멘트 덩어리였다. 마치 인간의 몸통 형상을 한 것처럼 보여 새까만 새벽의 어둠 속에서 나타난 그것들은 살아 움직이는 토르소처럼 내게 다가왔다.  그 후  혼자서 다시 그것들을 4*5뷰카메라를  가지고 촬영을 하고 제법 많은 양의 필름들을 가지게 되었다. 이 작업이  그 때 지속이 되었다면   벌써 매듭이 지어졌겠지만  그 당시 이 땅의 전국에 벌어지고 있는 신설 고속도로의 공사장에 보이는 미완의 교각들이 내 시선에 잡혀 그만 여러 해를 그 작업에 매진하게 되었는데 상판을 얹지 않은 채 벌판 또는 산 속 깊은 곳에 서 있는 이 다릿발들은 찍어야만 하는 정확한 시점이 정해져 있었기에   사발이 작업은 잠정적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한 번 밀려난 이 사발이 들은 그동안 건강을 이유로, 경제라는 이유로, 지속가능하지 못한 사진에 대한 절망 등  내 안팎의 여러 이유로 표류하다가  작년의 어느 날  사진작업을 이렇게 팽개치는 것은 오랜 시간 정진해온 사진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을 지탱해온 여러 가지 조건에 대해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직 예의를 갖추기 위해 장비의 먼지들을 털어내게 되었다.  쓰고 있던 뷰카메라를 사용하려 하였지만 이미 필름의 비용은 내 능력 밖이 되어버렸고 그래서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궁리하면서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인 5D로 할 수 있는 최대의 영역을 찿아 보았다. 다행히도 포토샵에는 포토 머지라고 하는 여러   컷을 이어붙일 수 있는 기능이 있었고 그것으로 내 시선의 왼쪽 오른쪽 위아래  한계점들을 확장하게 되었다. 뷰 카메라는 엄격한 자기통제를 통해 나온 근엄한 결과물이라는 장점을 가져다주었지만 그것의 운용비용은 접근하기에 힘든 영역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디지털이라는 소형의 장비는 게릴라처럼  준동하면서 부담 없이  크고 무거운 결과물을 가져다주었다.  이것은 내게 축복처럼 왔다.  물론 모니터 앞에 앉아있어야 하는 시간이 여름 해처럼 길어지긴 했지만 내게는 가능한 영역이기에 즐거움으로 오는 시간이었다.

짧게는 대여섯 컷, 길게는 사십여 컷을 다양한 방법으로 이어 붙여 완성시켰다
한 컷의 사진은 단일하고 동일한 시간과 공간을 구성하면서   붙박이의 시선으로 고착하게 한다. 그것이 사진이라는 고전적 영역의 장점이면서 미덕이기도 하였다. 시간과 공간의 붙박힘에 대한 증거는  오직 사진의 영역이었고 그것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을 우리에게 주었다. 그래서 한 컷으로 불후의 명작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고 엄숙한 노력을 하게 되었다.하지만 확장되어진 여러 장의 사진은 시야를 넓혀주었고 넓어진 그것은 단순한 시선의 확장이 아닌 인식의 질적 변환까지 이룰 수 있다는 느낌을 가졌다. 후렴구의 반복을 하나의 이미지 안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가능성, 동시에 한 장 안에 장노출이 아니면서 긴 시간의 폭을 축적할 수 있다는 가능성, 무거운 것들을 한없이 가볍게 노래하듯이 다듬어 낼 수 있는 이런 가능성들이 왼쪽 오른쪽으로 컷들을 이어 붙이면서  얻을 수 있었던 힘이기도 하다.    나는 내 사진들 속의 콘크리트 더미 속에 숨어있는 다양한 욕망을 읽어낸다. 건물로서의 콘크리트는 치환된 자본으로서 욕망의 상징이며, 길고 높은 교각들은 속도와 시간과 적의 빠른 제압에  대한 욕망의 또 다른 이름이며   사발이는  건물처럼 단일구조로서는 크질 않지만 뻗쳐나간 뿔의 구조로 인한 무한대의 연대를 통하여 끝없는 영토 확장의 욕망구조를 환유한다. 사발이는 상하좌우로 무한 증식하는 견결한 연대 속에서 식민지 확장을 꿈꾸는 제국주의처럼 야금야금 자연과의 구획을 지으면서 영토 확장의 목적을 수행한다.   게다가 이 확장의 끄트머리 수혜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사발이는 언급이 없다. 그렇게 사발이들은 욕망위계의 거의 꼭대기에서 우리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번 작업은  각각의 컷 하나하나가 가진 시간들을   계속 이어붙인 결과 한 장의 사진이면서 동시에 긴 시간의 영역을 담고 있게 된다. 영화에서의 롱 테이크와는 전혀 다른 시간의 축이 일직선상으로 길게 사진의 길이만큼 단 한 장의 공간 속에서 전개된다.  그래서 동일자가 한 컷 안에 동시에 여러 번 등장하는  매트릭스의 세계가 펼쳐지기도 한다.  이 지속되는 동일자의 차이의 반복들을 읽어보는 것 또한 이번 사진들의 재미중 하나가 될 것이다.  또한  이 대상들은 인간이 자연에게 힘을 행사했던 흔적들인 콘크리트 지층으로 고고학적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수 만 년 후의 또 다른 생명체가 이 지층을 바라본다는 것....

모든 풍경은 죽음에 대한 기록이며  사진은 그 죽음을 아주 차갑게 바라보는 관찰자이기도 하며 콘크리트라는 살아있지 않은 것의 자율적 운동 속에서   덧없음과 죽음의 트롱프뢰유를  본다.  “모든 견고한 것들은 대기 속으로 사라지고야 만다”는 것...... 空口里(콘크리트를 내 식으로 한자어로 바꾸어 봄, 끝없이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아귀의 입속처럼 비어있는 마을) 주민들은 새겨들어야 할 경구일 것...

오래 전 뷰카메라로 찍었던 사진들도 이번 전시에 포함시키려고 처음에는 생각했지만 과거의 관점과 지금의 관점이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모두 빼고 최근 작업의 몫만 정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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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 2013-12-2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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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1290  
http://photo21.or.kr/cafe/?myhomeboard.5997.2
“ 이희섭의 전시소식 알립니다. ”


http://map.naver.com/?menu=location&mapMode=1&lat=35.2257518&lng=129.1173833&dlevel=13&enc=b64

위 지도 주소에서 예술지구 P의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버스는  179   42    99번이  서며   버스정류소 명칭이 바로 욱성화학입니다.
내리면 바로 옆이 입구라서 찿기 쉽습니다.
승용차를 가지고 오시는 분은  도시고속도로 교각 아래 넓은 주차장이 있어 세우기가
아주 편합니다. 하지만 유료이고  하루종일 세워두어도 천원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도 부담이 되시면 부근에 비어있는 공간들이 구석구석에 있습니다  적당히 세우고 조금
걸으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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